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의 전개 (문단 편집) === 보병 === 전쟁 초반 보병의 '''훈련 경험과 장비 측면에서는 북한군이 위였다.''' 미군, 영국군, UN군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상당수의 정예병 군인들이 전역했고 지휘관들과 일부 병력을 제외하면 신병들이 많았다. 거기에 승전국이라는 입장이고 큰 전쟁을 두번이나 치룬 상황에서 당장 또다시 큰 전쟁은 안 일어날 것으로 판단하여 대대적인 군비 감축과 훈련 부족 현상을 겪기도 했다. 일본에 주둔해있던 주일미군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기동하는 트럭이나 전차, 장갑차같은 이동 수단이나 무기는 가동률이 떨어졌고 포병이나 보병 등은 훈련 부족으로 당시 북한군에게 밀렸다. 얼마나 훈련부족이었는가 하면 한국군이 중대훈련까지 마친 상황이라면 주일미군은 대대훈련을 위한 검열단계에서 머무를 정도로 거기서 거기인 상황이었다. 거기다 당시 미군은 한반도에 소수의 군사고문단 이외에는 주둔하지 않았고 지형지물을 익히지 않아 지리적 이점은 북한군이 우위였다. 그에 반해 북한군은 국공내전 당시 중국군 내부의 조선인 부대 3만명을 편입시켰고 구 일본군 출신, 팔로군 출신의 경험자들을 지휘관으로 삼았으며 소련의 군사 고문단의 훈련을 받아 사단급까지 훈련을 마치고 소련제 무장으로 장비한 군인이 육, 해, 공군을 합쳐 20만명 이상이었다. 이러다보니 미군의 주요 전력이 미 본토에서 한반도로 넘어올 때까지 일본에 주둔해있던 주일미군은 보병으로는 열세 그 자체였다. 그 결과 전쟁 초기에는 부산 교두보 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이 점령당하고 스미스 대대의 패퇴, 딘 소장의 생포 등의 패배의 치욕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이후 미 본토와 UN 가입국들에게서 주요 전력이 한반도로 건너왔고 2차 세계대전의 경험자들인 예비군도 투입되어 있어서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중국군이 조선인민군을 돕기 전까지 거꾸로 조선인민군이 밀리는 상황이 되었다. 무기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UN군이 우수했다. 소총은 소련제 [[볼트액션]] 소총인 모신나강보다 우수한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와 카빈 소총을 사용했다. 소총 이외 보병화기인 기관총, 기관단총, 박격포, 수류탄을 전부 설명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길고 화력이나 구경이 비슷했기에 넘어간다. 다만 가장 큰 차이점은 물량이다. 미군은 본토에서 보관하거나 운용중인 무기를 사용했고, 일단 의회가 지갑을 열고 공장을 돌려 '민주주의의 조병창'을 가동시킨 순간부터 물량에 있어서는 전혀 딸릴게 없었다. 반면 조선인민군은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했지만 전쟁중 손실되는 양을 보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북한 내부에 있었던 군수공장들은 대부분 미 공군과 영국 왕립공군, 남아공 공군 등의 UN군 항공세력의 근접항공지원 작전 등에 의해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소련으로부터 원조를 받기에도 해상과 공중이 막혀있었고 육로로는 시간이 너무 걸렸고 그마저도 제공권이 빼앗긴 상태라 보급로가 폭격당해 보급에 차질이 생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